오랜만에 고전 둠이 몹시 당겨, 백업용 하드디스크에 잠자고 있던 둠을 다시 꺼내 들었다.
선택: 둠 소스 포트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대충 살펴보았는데, 둠 소스 포트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하드디스크에 백업해 둔 둠 소스 포트는 GZDoom이었는데, 여태까지 뭐가 바뀌었나 하고 잠깐 검색을 해보니… 작년 10월 즈음에 프로젝트가 반으로 쪼개졌다고 한다. 정확히 따지면 반으로 쪼개진 게 아니라 프로젝트 메인테이너가 버려진 거지만.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GZDoom의 메인테이너, Graf Zahl의 행태에 진절머리가 난 사람들이 GZDoom 4.14.2 버전을 하드 포크하여 UZDoom으로 따로 떨어져 나갔다. 그 후, 다음 업데이트 때 추가되었어야 할 각종 기능들을 열심히 구현하여, 약 10개월 후인 올해 8월에 UZDoom 5.0 버전이 나온 거고.
Graf Zahl이 뭔 짓을 했기에 사람들이 정나미가 떨어졌나 했는데, 그럴 만도 하더라.
새로운 정식 버전이 나와야 사람들이 새 기능을 쓸 수 있는데, 업데이트 주기가 너무 느려서 사람들이 원하는 기능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장장 20년간 함께 해온 팀원들을 푸대접하고, 그들의 말을 무시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저작권 상 회색지대에 있어 프로젝트 라이선스인 GPL과 충돌할 수 있는 AI 생성 코드를 팀원들과의 상의 없이 무작정 리포지토리에 올렸으며, 여기에 대해 우려 혹은 반대를 표한 사람들의 말에 '꼬우면 포크 해서 나가던가'라는 식으로 대응했다고 한다.
… 이런 걸 뭐라고 부르더라? 나르시시즘? 보통 저런 걸 '상종하기도 싫다'라고 하던데.
뭐, 그래서 둠 소스 포트를 GZDoom에서 UZDoom으로 변경했다. 소스 포트를 변경하는 김에 설정도 완전히 바닥부터 다시 설정했고.
선택: 와드(WAD)
그다음으로는 플레이할 와드(맵)를 골라야 했다. 일단 내가 알고 있는 와드는 단 둘밖에 없다.
Going Down: Turbo
Going Down은 아래 동영상으로 유명한 Cyriak Harris(mouldy)가 만든 둠 와드이다.
UAC의 고층 건물의 옥상부터 시작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 한 층 내려가는 콘셉트의 메가와드인데, 갈수록 점점 지옥 그 자체로 변해가는 환경과 Cyriak이 직접 작곡한, 듣다 보면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은 BGM, 이미 정신을 놓은 스토리의 삼박자가 정말 매력적인 메가와드이다.
다만 2014년에 나온 오리지널 Going Down은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맵에 몬스터가 빽빽하게 배치된 터라, 플레이하다가 내 멘탈이 먼저 바스러질 것 같아서 10주년 기념 밸런스 패치 겸 리메이크작인 Going Down: Turbo를 하기로 했다.
실제로 이것저것 다른 모드를 테스트해 본다고 오리지널과 Turbo 버전을 비교 플레이 해보았는데, Turbo 버전이 훨씬 맵이 쉽고 직관적이었다. 몬스터의 양도 나름 할 만한 수준으로 나왔고.
Extermination Day
Extermination Day의 원래 이름은 'Brutal Doom: Hell on Earth Starter Pack'이다. 당연하게도, 해당 와드의 제작자는 브루탈 둠의 제작자, Sergeant Mark IV이고.
스타터 팩은 브루탈 둠과 함께 플레이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브루탈 둠이 없으면 제대로 맵을 플레이할 수 없다. 그래서 스타터 팩의 레벨에서 브루탈 둠 전용 아이템이나 몬스터를 바닐라 둠의 것으로 교체하여 범용성을 챙기는 Extermination Day가 기획되었다.
Sergeant Mark IV가 만든 ModDB 프로젝트 페이지에는 미완성 데모만 올라와 있는데, 브루탈 둠의 ModDB 페이지에 다른 누군가가 '바닐라 버전'을 올렸기에 이걸 선택했다.
다만, 이 글 제목에서 어느 정도 눈치챘겠지만, Going Down: Turbo를 하느라 진이 다 빠져버린 탓에 EDAY는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
Going Down: Turbo 100% 플레이
예전에 오리지널 Going Down을 한 번 플레이하긴 했지만, 그때 당시에는 '맵 클리어'만을 위해 치트를 온몸에 둘둘 두른 채 출구로 달리기만 했다. 그래서 그런가, 기억에 남는 맵은 MAP26, Insanity 밖에 없었다. 평범했던 사무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옥 그 자체가 되어가는 모습이 자뭇 충격적이었지…
그래서 이번에는 100% 플레이를 목표로 삼았다. 맵 상의 모든 몬스터를 죽이고, 시크릿과 아이템을 모두 확보하는 플레이이다.
































그리고 결국 해냈다.
각 레벨의 제목이 제법 인상 깊다.
- MAP01 Going Up: 와드 제목이 'Going Down'인데, 첫 레벨 제목은 와드 제목과 정반대이다.
- MAP03 Crawl Space: 실제로 대부분의 공간이 환풍구 혹은 하수구이다.
- MAP05 Time Warp: 멀쩡한 '현재'와 대부분의 시설이 파괴된 '미래'를 오가는 콘셉트의 레벨이다.
- MAP06 Painframe: Mainframe과 Pain을 한 단어로 합쳐버렸다.
- MAP07 Bad Reception: 실제로 맵의 배경이 UAC 건물의 '로비(리셉션)'이다.
- MAP08 Hide and Seek: 말 그대로 몬스터와 숨바꼭질을 해야 한다. 몬스터가 숨는 역할이라 문제지만.
- MAP11 Vivisection: 무슨 말장난인지 잘 모르겠다. 다른 건 어느 정도 알 것 같은데…
- MAP12 Dead End: 더 내려갈 길이 없어서 커다란 하수구 아래로 떨어지는 게 레벨의 끝이다.
- MAP15 Gladiator: 몬스터들이 둠가이를 내려다보는 아레나에서 악마들을 잔뜩 잡게 된다.
- MAP17 Rest in Pieces: 지하 묘소가 배경이다. 곳곳에 관짝이 한가득…
- MAP18 Buried Alive: 실제로 엘리베이터 문 앞이 막혀있어 총으로 부수고 나가야 한다.
- MAP19 100 Mega Hurts: Hertz가 비슷한 발음인 Hurts로 바뀌었다. 오리지널에서는 '200 Mega Hurts'였는데, 여기서는 반으로 줄었다.
- MAP20 The Mouth of Madness: 실제로 레벨의 끝이 '입을 쩍 벌린 악마의 목구멍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플레이어를 죽인 후 다음 레벨로 보내기 때문에,
god이던buddha던 전부 해제하고 떨어져야 한다. - MAP25 Forbidden Fruit: 문을 열기 위해선 맵 곳곳에 있는 '열매'를 총으로 쏴 터트려야 한다. 열매 주제에 피격 시 비명을 지르는 건… 지옥산 열매는 다 그런가 보지!
- MAP26 Insanity: 정말로 둠가이가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건지, 초현실적인 연출이 자주 보인다. 멀쩡하던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피칠갑을 하질 않나, 정상적인 사무실 공간이 지옥으로 변화하질 않나, 마지막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니 마치 플레이어가 뒤로 끌려가듯이 공간이 늘어지질 않나… 아마 이 와드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 깊은 레벨이 아닐까 싶다.
- MAP27 Hard Cover: 말 그대로 엄폐물에 제대로 숨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
- MAP29 Demolition: 악마가 득실득실한 UAC 건물을 완전히 폭파시켜 버린다. 그 후 나타난, 빨간 스파이더 마스터마인드도 처리해야 하고.
- MAP30 Game Over: 이 레벨은 특이하게도 몬스터가 끊임없이 생성되는 탓에 100% 달성이 불가능하다. 아이콘 오브 신처럼 어딘가에 본체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안 보이더라고. 오히려 본체를 찾으려다가 내가 역으로 텔레프랙 당해버린 적도 많다. 아무튼, '화장실을 많이 추가했다'는 Cyriak의 말대로, 커다란 변기 아래로 떨어지면 그대로 끝이다.
'고전 게임'에 완벽하게 해당되는 게임답게, 시크릿을 찾는 게 너무 힘들었다. 게임을 하다 말고 유튜브를 켜서 시크릿이 어디 있는지 확인한 것도 열댓 번은 될 것 같다.
그래도… 재미있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