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낮, 모두 베일을 벗는다 - 03

에코선 이름이 '노아'라고?

에코를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페비를 제외하고 본 적이 없었기에, 에코에 이름을 붙여 부르는 페비를 독특한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사람 ― 카를로타인 건 이미 잘 알고 있지만 ― 역시 에코를 이름으로 부르네?

… 어쩌면 리나시타의 모든 에코가 이름을 갖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

막차를 타기 위해 구름 바다에 있는 기차역에 급히 가야 한다는 카를로타와 잠시 동승하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막차는 그냥 핑계인 것 같은데.

깊은 바다 수도회가 세운 베키오 아카데미가 구름 바다에 잠겨 폐허가 될 때 있었던 일이 잔향으로 남았고, 그게 지금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로셀리라는 화가가 라군나성을 "세워지자마자 죽음을 맞이해 우리를 먹여 살리는 자양분이 된 괴물"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도시의 죽음에 비유되는 건 유동 인구가 줄어들 때이기에, 무언가 조금 이상한 표현으로 들린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한 걸까?

카를로타가 보는 라군나는 서로 반목할 수밖에 없는, "혁신과 개방을 추구하는" 몬텔리 가문과 "전통에 구속받는" 피살리아 가문이 억지로 융합된 상태라고 보는 모양이다.
그리고 카를로타는 바로 방랑자가 이 긴 냉전을 끝낼 열쇠라고 생각하고 있고.

뭐… 같은 배를 탔다고 볼 수 있긴 하지. 방랑자가 리나시타에 온 계기부터가 카를로타가 보낸 초대장이었으니까.

수도회의 성직자인 페비 역시 베키오 아카데미가 수도회에게 버려진 이후 여기에 오는 건 처음인 모양이다.

여길 잘 뒤져 보면 수도회의 과거 모습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모든 것을 로렐라이에게 전부 맡기는 겁니다.

네, 광신도 확정.

로렐라이가 잔뜩 화가 난 바람에 로렐라이에게 가는 길을 봉쇄할 수밖에 없었다며 도저히 길을 열어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쯧, 광신도가 그러면 그렇지.

결국 얻을 수 있었던 건 "로렐라이의 노래에 맞춰 마음이 이끄는 대로 걸어 나가면" 로렐라이를 만날 수 있다는 정보뿐이었다.

'노래를 부르면 길이 열린다'라는 단서를 얻었다.

아니, 대체 어떻게 에코의 말을 알아듣는 거지?
페비의 공명 어빌리티 때문인가 싶어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페비의 공명 어빌리티는 '에코의 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주변을 진정하는 효과'이다.

방랑자와 젠니가 에코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 보면, 페비 역시 비슷한 상황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척하면 척' 정도가 아니잖아…

아무튼, '정해진 노래를 불러라'라는 단서를 얻었다.

고대 신성 문자가 새겨진 비석이라… 베키오 아카데미가 구름 바다에 잠긴 건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던 걸까?

어떤 형체 없는 커다란 짐승이 임페라토르와 만나 인간과 유사한 형체로 변하는 그림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로렐라이의 일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임페라토르의 모습이 페비가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르다고? 수호신이 모습을 바꾸는 일도 있는 건가?

로렐라이에게 향하는 길에는 "우리가 성녀의 숭고한 희생에 슬퍼하고 있다"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깊은 바다 수도회가 세운 베키오 아카데미에 "성녀의 숭고한 희생에 슬퍼하고 있다"라는 문구가 있으니, 가장 연관이 깊은 건 페비가 언급한 「성녀 아리아」라는 찬송가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 노래를 알고 있는 건 페비 혼자 뿐이니… 불러야겠지?

페비가 찬송가를 부르자, 정말로 로렐라이에게 가는 길이 열렸다.

페비는 표정이 정말 다양해서 보는 맛이 있다니까…

이야, 블레이드 댄서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생각했는데, 여기에 있었던 거야?

아까 광신도가 한 말이 허언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로렐라이가 블레이드 댄서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로렐라이가 「성녀 아리아」를 듣고 "가식적인 노랫소리", "가려지고 왜곡된 해석"이라며 혹평을 내린다.
성녀의 희생에 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건가?

그나저나 로렐라이의 칭호가 '밤의 여왕'인 것으로 보아, 아까 질베르토가 말한 '여왕'은 바로 로렐라이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까 비석에서도 '여왕'이란 단어가 보였었고.

아니나 다를까, 로렐라이가 폭주한 건 바로 피안화 때문이었다.
정황상 아까 그 광신도가 말한 "괴이하고 광기 어린 가면"을 쓴 사람들이 로렐라이에게 피안화를 붙여 폭주시킨 모양이다.

역시. "광기 어린 가면"을 쓴 사람이 가져온 피안화가 구름 바다는 물론이고 그 안에 살고 있는 로렐라이의 주파수까지 오염시키는 바람에 로렐라이가 폭주했던 것이었다.

로렐라이가 "끝없는 악몽에 갇혔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피안화가 에코 혹은 울림 생물에게 끼치는 효과는 대상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오직 분노와 슬픔으로만 움직이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즉, 외부에서 대상을 두들겨 패 진정시키거나 피안화를 제거해야만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비석에 그려진 내용대로, 로렐라이가 사람의 형태를 취하게 된 것은 임페라토르 덕분이었다.
임페라토르는 로렐라이를 빚으며 구름 바다를 통제해 울림 에너지가 손실되는 것을 막으라는 명령을 내렸고, 로렐라이는 그 명령에 따라 여태껏 구름 바다 속에 살며 구름 바다를 통제해 온 것이었다.

그런데 구름 바다를 통제하는 이유가 울림 에너지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고? 대체 왜?

수호신과 인간계의 관계가 이미 단절되었다고? 그러면 수호신의 공명자라고 알려진 수도회의 현 수좌, 펜리코는 대체 뭐지?
수호신이 선지자가 아닌 사람들의 부름에 응답할 것이라 말하는 걸 보면, 펜리코는 수호신의 공명자가 아닌 모양이다.

로렐라이가 알려준, 수호신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은 카니발에서 "오래된 서약의 의식"을 완성하는 것뿐이라고 한다.

"지휘자"… 아무리 생각해도 플로로를 지칭하는 모양인데.
잡석고지에서의 플로로 역시 피안화를 지휘봉처럼 휘두르고 있었으니까.

마침 경매 때문에 몬텔리 가문의 고위층 모두가 아베라르도 금고에 모일 예정이라, 젠니와 방랑자는 아베라르도 금고에 가 피살리아 가문 뒤에 잔성회가 암약하고 있음을 보고하기로 했다.

페비는 오늘 일은 일단 비밀로 하고, 수도회에 돌아가 이번 일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기로 한다.
로렐라이의 말이 맞다면, 수호신의 공명자라고 알려진 현 수좌, 펜리코는 '수호신의 공명자'가 아닌, 역대 수좌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칭 '수호신의 대변자'일뿐이니까.

 

수도회의 수좌, 펜리코가 수호신과 공명한 적이 없음에도 수호신의 공명자를 자처했다는 건 수도회 전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일이 된다.

펜리코가 수좌 자리에 오른 건 아무리 짧게 잡아도 흑조 사건이 있었던 10년 전이다. 당시 펜리코는 수호신과 공명해 '수호신의 징벌'로 알려진 흑조 사건을 끝냈다고 했으니 말이다.

수도회의 수좌로서 펜리코는 라군나성에 다양한 압제 정책을 펼쳤다.
매년 열리던 것으로 추측되는 카니발의 개최를 10년째 막고 있으며, 수도회의 정책에 반발하는 사람들을 우인으로 낙인찍어 순례선에 태워 추방했다.
당연히 그 모든 걸 '이게 다 수호신의 뜻이다'라고 포장했겠지.

그런데 알고 보니 수호신의 뜻은 개뿔이고 이 모든 게 전부 펜리코가 사기를 친 것이었다는 거다.
여태껏 수도회가 온갖 만행을 부려도 괜찮았던 건 그 모든 게 수호신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게 밝혀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단 수도회가 10년 동안 벌인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시 다 검토해야지.
카니발의 제한이 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 사람들을 우인으로 낙인찍은 것 역시 취소되어야 한다.
일반 행정 조치는 어렵긴 해도 가능은 하다. 하지만 우인은 다르지. 여태껏 수도회가 우인으로 낙인찍어 추방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가서 소식을 알려줘야 하는데… 가능하겠냐?

수도회의 신뢰성이 바닥을 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여태껏 수도회가 수호신의 말씀을 받들어 모시는 집단인 줄 알았는데, 이야, 알고 보니 순 사기꾼 집단이었잖아?

수도회의 신뢰성이 바닥을 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라군나성의 행정청 역할을 하던 수도회가 더 이상 라군나성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수도회에서 무언가 어깃장을 놓으려 할 때, 사람들이 '근거 있어?'라고 묻는다면, 수도회가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수호신의 뜻? 지랄하고, 자빠졌네!
경전에 쓰여 있다고? 그것도 조작한 거 아냐? 못 믿겠는데?
「라 과디어」로 밀어붙이려고? 여기 깡패가 사람 팬다!
레볼루숑! 우리가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자유다!

수도회가 갖고 있던 공공 에코 관리 권한도 무사하진 못할 거다.
이미 수도회는 에코 중 일부를 「라 과디어」로서 운용하고 있다. 언제 수도회가 리나시티 공공 에코를 사유화해 「라 과디어」로 삼을지 모르니, 공공 에코 관리 권한을 민간에 이양하는 것 역시 수도회 개혁에 포함될 것이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수도회의 권한과 규모가 대폭 축소되는 결말밖에 보이지 않는다.

'노아'를 타고 아베라르도 은행으로 향한다.

구름 바다에 가라앉은 잔향에는 베키오 아카데미 붕괴 당시의 일만 있었던 게 아닌 모양이다.

베키오 아카데미에는 카니발 의식 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검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아카데미 붕괴 당시 유실되었다가 구름 바다 탐사자가 이를 회수하였고, 이후 구름 바다 인근에 있는 성당 시계탑에 검을 보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물의 경지는 상당히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아베라르도 금고는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에코선이 도대체 그 높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려는 건가 궁금해했는데… 그냥 폭포를 거슬러 타고 오르더라고.

아니, 그런 방법이.

'여성', '보석'… 아무래도 카를로타가 아베라르도 금고로 향하는 길에 마주친 잔성회 아지트를 초토화시켰나 보다.

거기서 용케 도망친 녀석과, 지원하러 온 잔성회 녀석들은 모두 방랑자가 ★나 카와이하게 잘라 버렸다.

어… '게이트 수호자'? 이거 번역이 많이 이상한데. 게이트 수호자는 「신비한 경지」에 나오는 NPC 이름 아냐?

쿠로 이 녀석들, 번역 조금 개선했다던데 순 뻥이었구만, 그래?

아, 이 녀석. 카를로타가 쓸 녀석이라 하루 종일 잡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원하는 옵션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나오지 않아, 순간 게임을 접어야 하나 고민까지 했었던 녀석이다.

이름이… '이성(異性) 무장'이었던가. 대체 무슨 뜻을 가진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다.
영어 이름은 인위적으로 가공된 경비원 에코라는 뜻이 확 와닿는 'Sentry Construct'라서, 대체 왜 그런 이름으로 번역한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아무튼, 이성 무장은 일반적인 공명자가 한 부대 정도 몰려와도 너끈히 이길 수 있다고 한다.
음… 그러면 우리가 플레이할 수 있는 '네임드' 공명자들은 특출 난 고수라는 거네.

아베라르도 금고에 리나시타 전체의 자산 절반 정도가 보관되어 있다는 건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더욱 놀라운 법이다.

미국에 보관되어 있는 금은 대략 8,000톤 정도인데, 그중 미국 연방정부 소유의 금이 약 2,200톤이다. 그리고 그 상당수가 포트 녹스(Fort Knox)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나머지는 뉴욕 연방준비은행 금고에 보관되어 있고.

뭐랄까, 입이 쩍 벌어지는 규모네.

내가 카를로타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성 무장 에코를 파밍 했다는 건 스토리 중 이성 무장과 맞서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내심 언제 이성 무장과 싸우게 될까 기대했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 이성 무장이 방랑자 앞에 거칠게 내려앉는다.

우리, 이제 한 판 거하게 싸우는 거야?

하지만 카를로타가 다른 이성 무장을 타고 내려와 적대 행위를 중단시키는 바람에 내 소원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카를로타의 이름을 정식으로 듣는 건 이번이 처음이구나?

이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젠니에게 방랑자의 접대를 맡긴 것 역시 카를로타였다.
카를로타가 검은 해안을 통해 방랑자를 리나시타로 초대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방랑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설계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그나저나 젠니가 가장 믿음직한 직원이라니. 평소 하는 말로 미루어 보면 그냥 피곤에 찌든 직장인 그 자체인데 말이다. 눈에 다크서클 같은 것도 있고 말이야.

카를로타가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별로 좋지 않으니 금고 안에서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몬텔리 가문의 자랑이자 심장에 온 걸 환영해.

아베라르도 금고의 규모를 보면 확실히 자랑이라 생각할만하다.

comments powered by Disqus